소이초등학교 충도분교장

충청북도 음성군 소이면 충도리 704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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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도

지역사회배경

본래 충주군의 사이면 도남리인데 서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도남리와 충원리의 이름을 따 충도리라 하여 현재는 충도4리로 불러지고 있다. 이 마을은 소이면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도남리라하고 산직말, 음달말1993년 8월 15일 마을 회관앞 광장에 총 높이 240cm, 비신가로 120cm, 비신세로 80cm 규모로 군비 100만원, 자부담 100만원의 예산이 소요되어 건립되었다.
기단부는 방형이며 오석의 비신에 마을 연혁․자랑 등이 기록되어 있고 가첨석에 '도 남'이라 각인 되어 표석 역할도 하고 있다. 마을비 우측으로 김용식씨의 불망비와 김명기씨와 박정치씨의 자선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 양달말의 세동리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고려 제22대 고종23년 서기 1236년 글안병이 침입. 구안래에 주둔하여 음성 수정산성에 진을 친 박서장군과 대치하던 글안장수가 이 곳 형세를 보니 장수가 탄생할 곳이라 장개바위 넘는 고개길을 파해쳐 흙무덤을 만들어 혈을 끊고 도남고개를 칼로 찌르니 돌연히 백마가 나와 주인을 찾으니 없는지라 백마가 죽어 고개 우측에 말무덤을 만들어 놓고 이 마을 장수탄생을 막았다 한다. 이 마을은 남산에서 뻗은 수용산을 중심으로 음달말을 이루고 금봉산 줄기 뻗어 양달말을 이루며 병풍처럼 휘감아 오봉산 낙막 금봉산 하에서 언젠가 천하를 호령할 장수의 탄생을 연민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웅지의 마을이다.
본래 충주군 사이포면 지역으로 「여지도서」충원현 조에 도남리는 충원(충주)현에서 서남쪽으로 50리 거리에 있으며 호수 60호, 남자 127명, 여자 177명이라 기록되어 있다. 1914년 5월 19일 도령고시 제29호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도남리, 양전리, 삼고리, 원충리 각 일부와 음성군 군내면의 석인리 일부를 병합하여 원충리의 충자와 도남리의 도자를 따서 충도리라 하여 음성군 소이면에 편입되었다. 해방직후 1945년 11월 2일 법령 제21호에 의하여 일제 총독부 지방관제를 그대로 이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本來 忠州郡 沙伊浦面 지역인데 1913年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道南里, 陽錢里, 三古里, 元忠里의 忠字와 道南里 道字를 따서 忠道里라해서 陰城郡 蘇伊面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