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초등학교 금계분교장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금계리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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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배경

※ 위치
금계리는 면의 중앙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100호 정도가 살고 있고 인구는 272명이다. 동은 국사리, 서는 동림리, 남은 환희리, 북은 수락리에 접해 있으며 천수천의 심한 곡류부에 발달한 마을이다.

※연혁
금계리는 본래 청주군 서강외이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금동리, 금평리, 금북리, 신계리, 곡수리 일부를 병합하여 금북과 신계의 이름을 따서 금계리라 하여 옥산면에 편입되었다.
금계라는 지명에 대해서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어떤 사람이 화로만한 금덩이를 찾았는데 그 금덩어리를 사람들 몰래 냇가 근처에 묻었다고 한다.
그 다음에 묻은 곳을 파보니 금덩어리가 없어져서 통곡을 하며 "아이고 금아 아이고 금아" 해서 금계가 되었다.
금계는 천수천변의 마을 중에서 들이 제일 좋은곳이다.
밭이 없고 논이 많은 상답이다.

※ 자연마을
안말(금동) : 금성 동쪽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
아구배 : 금성 남쪽 벌판에 있는 마을. 옛날에 아가위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마을의 인심이 후덕하여 '후덕벌말'으로 부르기도 한다.
질울(금북) : 금성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신계(금북) : 질울 동쪽에 있는 마을/ 폐동이 되었다가 다시 병합되었다.
파락골 : 묘막집이 있어서 지어진 이름. 청주곽씨 서산공의 묘막집이 있다. 새재 동쪽에 있다.

※ 집성
금계리에는 조선초기 단종시해사건을 본 사산공(음)과 병사공(비)형제가 불의에 격분하여 벼슬을 버리고 1458년 운둔하여 약560년을 집성촌으로 살아온곳으로 청주 곽씨가 50호 정도 살고 있다.
병사공과 서산공이 형제간인데 서산공은 원주에 살고, 병사공은 금계에 살았다.
형 서산공은 동생을 보러 황소를 타고 매일 병사공을 찾아왔다.
그러다가 원주에서 돌아가셨는데 동생이 형과의 우애를 생각하여 금계파락골에 모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