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룡초등학교

충청북도 괴산군 도원리 287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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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도

지역사회배경

금평 1구
1) 지명유래
본래 청주군 청천면의 지역으로 지형이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옥녀기비형)이라하여 금평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폐합에 따라 북암동, 삼거리, 점촌, 고석곡을 병합하여 금평이라 해서 괴산군에 편입되었으며, 1985년 1월 1일자로, 1․2로 나누어 분리되었다.

2) 자연마을
고석곡 : 리의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고석이 있음
북박골(종박골) : 리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북쪽에 북바위가 있음
주택 : 리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로서 1960년도에 난민정착사업에 위해 새로 생긴 마을로 당초에는 30세대였었음.

3) 지명, 산천
노적봉 : 노적가리 같이 생긴 산으로 북바위가 옆에 있음
금평보 : 금평 서북쪽에 있는 보
금평소유지 : 금평 서북쪽에 있는 둑, 1966년에 시설됨
금평제방 : 금평서불쪽에 있는 둑. 길이 150m, 1966년에 완성됨
북바위 : 북박골 서북쪽 산에 있는 바위, 모양이 북처럼 생겼음.
설운산(해발 593m) 이산의 연봉들을 경계로 서쪽의 부흥리와 청천리가 나뉘어 진다.
고석골 : 고석골 마음 뒤편 서쪽에 동향한 골자기로 아래에 작은 소류지가 있다.
작은 도둑골 : 고석골 마을 북쪽에 있는 동향한 골짜기
큰 도둑골 : 작은 도둑골 북쪽에 있는 동향한 골짜기
가는 골 : 주택 마음 서쪽에 있는 동향한 골자기
구밭골 : 북박골 마을에서 설운산을 향하여 난 골짜기의 웟부분을 이르는 이름

금평 2리
1) 지명유래
본래 청주군 청천면지역으로 지형이 옥녀가 비단을 자는 형국이라 하여 금평(金坪)이라 하였는데, 1914년 괴산군 청천면에 편입된 후 1985년 1월 1일 1․2로 분리되었다.

2) 자연마을
삼거리(청천삼거리) : 금평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괴산, 청천, 화양동으로 가는 세 갈래길이 있음
새터말(新基) 삼거리 북쪽에 새로 된 마을
점촌 : 삼거리 동북쪽에 있는 마을. 전에 그릇점이 있었음

3) 지명, 산천
점번던 : 금평2리 삼거리 위에 있는 들판이 옛 이름으로 들판이 넓고 광활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함.
당재 : 금평2리 삼거리에서 윈후평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
상대골 : 삼거리에서 당재로 가는 골짜기
아나리골 : 청천리에서 삼거리로 넘어오는 고개 북쪽에 남동향한 골짜기
파박골 : 삼거리 서쪽 150m 거리에 남동향한 골짜기
송성지들 : 삼거리와 북쪽의 새터사이에 있는 들
절골 : 송성지들 서쪽 골짜기로 들이 넓고 골이 크다. 위쪽에 소류지가 있다
진등들 : 점촌 남쪽에 형성된 들 이름
진등고개 : 점촌에서 도원리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
당봉(해발 293.8m) : 섬거리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고성리와 경계를 이룬다. 삼거리쪽 능선은 비교적 완만하나 고성리쪽 박대천에 이르는 남족사면은 경사가 급하다.
구멍바위 : 삼거리 마을에서 동쪽으로 150m 거리에 괴곡천 변에 있는 바위절벽으로 바위에 직경 150cm 가량의 구멍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

4) 유물. 유적
- 서봉 김사달 박사 묵적비
진등고개 마루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산기슭에 묘소와 비가 있다. 서봉 김사달은 독학으로 공부하여 3개의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행정가로서 뿐만 아니라 서화등 예술문화 부분에 까지 뛰어난 재능을 보인 명사로 평가되고 있다.

도원리
1) 지명유래
면적 8.06㎢, 인구 408명, 면의 중서부에 위치하며 동은 화양리, 서는 금평리, 남은 고성리, 북은 무릉리, 대티리에 접하고 있다. 본래 청주군 청천면에 속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어룡리, 중리, 강정리를 병합하여 도원리라 이름하고 괴산군 청천면에 편입되었다. 지명과 관련하여 옛날 이곳이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마을로 신성이 살았다는 중국의 무릉도원과 같은 곳이라하여 도원리라 이름지었다고 하며, 옛날 이 마을의 앞들을 무픙들이라 하고 원도원 마을 가운데에 무릉원이란 비가 있으므로 중국의 무릉도원의 이름을 따라 도원리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무릉원비는 옛날 무사들이 모여 무술을 연마한 곳이어서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 전하기도 한다.
현재 이 비는 1980년 8월 수해로 도원교까지 떠내려 간 것을 새터말쪽 다리 옆으로 끌어 올려 새터마을 진입로 입구에 세웠다. 도원리는 현재 원도원리, 신도1리, 신도2리의 3개 행정리로 나누어진다.

원도원리
1) 지명유래
본래 청주군 청천면의 지역으로서, 마을 복판에 무릉원이란 비가 있으므로 중국 무릉도원의 이름을 따라 도원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어룡리, 중리, 강정리를 병합하여 도원리라 해서 괴산군에 편입되었다.

2) 자연마을
어룡 : 원래는 비렁이 마을이라고 하였음. 이 마을은 논이 대부분으로 전에는 모두 7월이후 큰 장마철이 되어야 모내기를 할 수 있는 천수답인 관계로 해마다 흉년이 들어 살기가 극도로 어려웠으므로 비렁이 마을이라고 불러오다가 어룡 소류지가 생긴 후부터는 제때에 모내기를 하고 소류지엔 고기가 떼지어 살았다하여 어룡이라 이름함.
통미(통산, 독산, 독뫼) : 어룡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외딴 산이므로 독산 또는 독뫼라고 불렀던 것이 와전되어, 통산, 통미라 부른다고 하며, 혹은 턱 밑에 산이 있는 것 같아 통미(턱뫼)라고 부른다고 한다.

3) 지명 산천
어룡소류지 : 어룡 서북쪽 200m 정도의 거리에 있는 소류지
대술이골 : 어룡소류지 북쪽 서편에 남향한 골짜기
서당골 : 어룡소류지 북쪽 동편에 있는 골짜기
마른들 : 어룡 앞에 펼쳐진 큰 들
오갈골 : 어룡 마을 옆 동쪽에 통미를 향하여 남향한 골짜기

신도 2리
1) 지명유래
본래 청주군 청천면 지역으로 중리와 강정이(강정리)가 중심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도원리에 편입되어 행정리 구분에 의해 신도원2리가 되었다.

2) 자연마을
강정리 : 리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느티나무 정자가 많다.
중리 : 리의 북쪽에 있는 마을

3) 지명, 산천
섬들 : 강정이 북쪽에 있는 들
뻘대기들 : 강정이 서쪽에 있는 들
동들 : 강정이 동쪽 박대천 가에 있는 들

대티리(한티)
1) 지명유래
본래 청주군의 지역으로 큰 고개가 있어 한티 또는 대티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티리라 하여 괴산군에 편입되었다.

2) 자연마을
새터 : 리 동쪽 박대천(달천)변에 새로 형성된 마을
낭골 : 새터에 서 북쪽으로 개미등날골 동편에 있는 마을, 예산 큰 재난 때와 6.25전쟁때에 많은 주민이 이곳에 들어와서 안전히 피신하고 살만큼 아늑한 곳이라 하여 유래된 이름
웃말(상촌) : 리 위쪽에 있는 마을
아래말(하촌) : 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
양지말 : 한티 양지쪽에 잇는 마을
음달말 : 양지말 맞은편에 있으며 마을뒤로 산이 있어 붙여졌다 한다.

3) 지명 산천
동침말 : 풀모골 어귀에 2채의 짐이 있었는데 당초에는 마을이 한치와 이웃이어서 마을의 동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가마소재(가마솥고개) : 한티에서 도원리로 넘어가는 마을 남족에 있는 고개로 고개밑에 가마소라는 다는 곳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 함.
새보골 : 한티에서 동쪽으로 산지 사이에 형성된 골짜기로 산지사이에 골이 파졌다하여 붙여진 이름
개미등날골 : 새터에서 서북쪽으로 형성된 골짜기
뒷터골 : 개미등날골 중간부 동쪽의 낭골에서 북쪽으로 형성된 골짜기
큰고개(한티) : 뒷터골을 따라 북으로 거봉리로 넘어가는 고개
안새보골 : 새보골 안쪽 양지말 동편에 있는 동북향한 골짜기
백정골(백장골) : 백장(백정)들이 살았던 곳이라도 하며, 동침말 옆에 있었으나 동침말이 없어지면서 애장터로 사용되던 곳이라 함.
풀모골(품모골) : 백장골 서편에 있으며 골의 앞산이 풀모같이 생겼다해서 붙여진 이름
절골 : 아랫말 뒷산 북방 3km지점에 절이 있었으므로 붙은 골짜기 이름
봉토골 : 아랫말 회관 뒤에 있으며 마을 중앙에서 제일 가까운 골짜기임
벼락바위 : 양지말 뒷산을 넘은 고개옆에 있으며 우기에 큰 벼락을 맞았다하여 붙은 이름
무리골 : 태주봉 서쪽 도원교 북쪽에서 마을쪽으로 난 골짜기로 계곡을 따라 논이 이어짐
까투리골 : 무리골 서쪽에 있으며 도원리 쪽에서 가마소재를 향하여 난 골짜기

무릉리
1) 지명유래
본래 청주군 청천면에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차동, 우동, 내산막리, 외사막리와 도원리 일부를 병합하여 무릉리라 하고 괴산군에 편입되었다. 지명과 관련하여 사방의 산이 높고 그윽해서 마치 무릉도원과 같다 하여 무릉이라 하였다고 하며 옛날에는 도원리와 한 마을이어서 도원리 앞들을 무릉들이라 하고 원도원 마을에 무릉원이란 표석이 있었으므로 무릉리로 불렀다고 한다.

2) 자연마을
아차실(아차동, 차동) : 무릉리의 중심마을로 리의 남서쪽에 있다. 마을이 울룩불룩하여 높은 산 깊은 골짜기를 아차동이라 했다고 하며, 옛날에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아버지의 꿈에 호랑이가 나타나서 만류했다 함) 나무하러 갔던 나무꾼이 귀가 도중 호랑이를 만나게 되자 아차하고 부친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한편 일설에는 이 지역의 대성인 안동 김씨의 선조로 공조참의를 지낸 계정의 묘서가전군 6대 명당중의 하나인데 장례때 지사가를 지낸 계정의 묘소가 전국 6대 명당주의 하나인 장례때 지사가 지시한 광중의 깊이를 무시하고 더 깊게 파내던 중 광중에서 백학이 날아가서 산의 음덕이 소진되었다고 아차하였다고는 유래로 이름지었다고 함.
소골(우동) : 리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
안산막이(내산막) : 산막골 안쪽에 있는 마을
바깥산막이(외산막) : 산막골 바깥쪽에 있는 마을

3) 지명, 산천
서당골 : 592번 지방동에서 북으로 무릉리 아차실에 진입하는 도로 서편 약 600m 거리에 동향한 골짜기
덜언이골 : 아차실 북동쪽에 있는 남향한 골짜기
조롱목고개 : 내산막에서 아차실로 넘어가는 고개
다람실골 : 외산막에서 서북쪽으로 500m 거리에 있는 남향한 골짜기
밭소골 : 소골 남서쪽에 있는 남향한 골짜기
생골 : 소골 서북쪽에 잇는 남향한 골짜기
윗방아다리골 : 592번 지방도로에서 소골로 진입하는 도로의 동편에 마을에서 약 500m 거리에 있는 서향한 골짜기
새작골 : 소골 동쪽에 있는 남서향한 골짜기
대산(해발 646.6m) : 리의 북서쪽에 있으며 이 산을 경계로 거봉리, 월문리와 나뉘어진다.

화양리
1) 지명유래
본래 청주군 청천면의 지역으로서 황양목이 많으므로 황양동이라 하였는데, 효종대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살면서 화양동으로 고쳤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현천리를 병합하여 화양리라 해서 괴산군에 편입되었으며 1985년 1월 1일자로 1,2로 분리되었음 화양구곡과 만동묘가 있어서 유명함.

2) 자연마을
원화양(상촌) : 화양리 중 마을형성이 가장 먼저 된 곳으로 화양동의 맨 위쪽에 있는 마을
하촌 : 화양동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일명 민박마을이라고도 칭함.

3) 지명, 산천
능파도 : 냇가 이름, 산수가 수려하며 해가 제일 늦게 진다 함. 물결이 파도처럼 일고 바우가 파도처럼 보임
짐나는 꼭대기 : 파천 건너에 있는 산으로 높이 349m 꼭대기에 바위가 있는데, 겨울에도 그 사이에서 김(짐)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
화양구곡 : 화양 구곡은 하촌에서 화양천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약 3km 에 걸쳐 있는 빼어난 경치중 9곳을 지칭하는 말이다.
제1곡 경천벽, 제2곡 운영담 제3곡 읍궁암 제4곡 금사담 제5곳 첨성대 제6곡 능운대 제7곡 와룡담 제8곡 학소대 제9곡 파천
곰네미골 : 상촌 앞산에 있는 골짜기로 옛날에 곰이 넘어다녔다고 한다.
재피골 : 상촌 앞산에 있는 골짜기
박쥐바위 : 재피골에 있는 바위, 바위에 작은 굴이 뚫려 있는데 박쥐가 많이 살고 있어서 붙은 이름임.
사자목 : 학소대 뒤에 있는 골짜기로 지혈이 사자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된 이름임
인봉골 : 사자목 위에 있는 골짜기
사기장골 : 민박촌에서 새로난 우회도로를 따라 2km 정도 위에 있는 곳으로 사기 그릇을 만든 곳이 있었음
풍무지골 : 사기장곡 옆 북쪽에 잇는 골짜기로 예전에는 서늘한 바람이 항상 맴돌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임
원탑골 :(온탑골, 원태비) 하촌에서 우회도로로 송면을 따라 나 있는 골짜기
두툭바위골 : 하촌 남쪽 옆에 있는 골짜기
백정골 : 원탐골에서 남쪽으로 있는 북향한 골짜기, 하촌에서 300m 거리에 있음
탑문박골 : 원탑골에서 남쪽으로 잇는 북향한 골짜기, 하촌에서 800m 거리에 있음
능파두들 : 화양천과 박대천이 합류하는 곳에 동쪽으로 펼쳐진 들로 이 들과 냇가 사이에 야영장이 있다.
양주바위 : 하촌 아래 강가에 있는 바위, 하는 뾰족해서 애비바위, 하는 우묵하게 파여서 어미바위라고 함.
왕바위 : 하촌 앞 물 가운데에 있는 큰 방위
화양보 : 상촌 앞에 있는 보

4) 유물,유적
화양서언지 : 화양성원은 조선 숙종 22년 (1696)에 문정공 좌의정 우암 송시열의 영정을 모시고 제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창건되던 해에 사약을 받고 숙종 42년(1716)에 어필로 편액을 달았다.

화양 2리
1) 지명유래
본래 청주군 청천면의 지역으로서 황양목이 많음으로 황양동이라 하였는데, 효종대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서 살면서 화양동으로 고쳤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현천리를 병합하여 화양리라 해서 괴산군에 편입되었으며 1985년 1월 1일자로 1,2로 분리되었다.

2) 자연마을
가무내(현천, 현천리) : 상촌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앞에 잇는 강물빛이 매우 검다하여 붙여진 이름

3) 지명, 산천
말미산 : 가무내 앞에 있는 산으로 천지 개벽시 말 모양과 비슷하게 남고 물에 잠겼던 산이라 함.
태주봉 : 가무내 뒤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가 도장처럼 생겼다고 하기도 하고 천기개벽시 사람의 태만큼 남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함.
꼬박골 : 현천 앞 말미산에 있는 골짜기로 가파르고 험해서 꼬박 한 시간이 오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
무리골(몰이골) 현천 입구 도운교 북쪽에서 대티로 넘어가는 골로 물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
현천광산 : 가무내 마을 뒷산에 잇는 중석광산

후영리
1) 지명유래
본래 안후영, 밖후영, 농소막이 중심마을이었으며 청주군 청천면에 속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후영리라 이름하고 괴산군 청천면에 편입되었다. 마을앞을 흐르는 박대천이 여러번 휘었으므로 후영이라 한 것을 한자표기로 음이 비슷한 후영리라 하였다.

2) 자연마을
농소막(농수리, 용수막) : 밖후영 동쪽 박대천을 바라보는 골짜기의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농막이 있었다고 함.
밖후영(외후영) : 후영이 바깥쪽에 잇는 마을
안후영(내후영) : 후영이 안쪽에 있는 마을

3) 지명, 산천
후영고개 : 화양리 가무내에서 밖후영으로 넘어가는 고개
태주봉 : 밖후영 서쪽에 있는 봉우리(해발 392.2m)로 이 봉우리의 연봉들이 후영1리의 서․북면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안구태골 : 안후영 앞에서 농소막 앞까지 이어진 골짜기
솔머리골 : 밖후영 동남쪽에 있는 동향한 골자기
바탕고개 : 밖후영 안구태골로 넘어가는 고개
금무고개 : 후영에서 청소년 야영장으로 넘어가는 고개
밀바위 : 지금은 청소년 야영장이 된 옛 대후초등학교 동쪽 박대천 변에 있는 바위

후영 2리
1) 지명유래
본래 청주군 청천면에 속했던 노루목, 백로담, 설은이 등이 중심마을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괴산군 청천면 후영리에 편입되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박대천이 여러번 휘었으므로 후영이라 하였는데 한자로 후영리라 하였다.

2) 자연마을
노루목 : 백로담 북쪽 박대천 건너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으며, 마을 북쪽에 작은 소류지가 있다.
백로담 : 박대천을 사이에 두고 노루목과 남북으로 마주하고 있는 마을로 백로가 마을 앞 강에 와서 많이 놀았고 마을의 모습이 백로와 같이 생겼다고 하여 백로담이라 함.
설은이(설운리) 후영이 동쪽에 있는 마을. 높은 산으로 둘러쌓여 눈이 많이 쌓이고 항상 구름이 흐르는 곳이라 하여 설은이라고 함.

3) 지명. 산천
작은설은이골 : 후영1리 농소막에서 박대천을 건너 마주보이는 골짜기로 서향하고 있다.
마당바위 : 작은설은이골 입구에서 북쪽으로 박대천을 따라 약 300m 하류에 있는 바위
즘골 : 백로담 마을에서 동남쪽으로 약 500m 정도 거리에 있는 서향한 골짜기
말림들 : 백로담 마을에서 동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서북향한 골짜기로 밤나무가 많다.
밤나무골 : 백로담 마을에서 동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서북향한 골짜기로 밤나무가 많다.
통정골 : 노루목 마을에서 동쪽으로 박대천을 건너 약 300m 거리에 있는 골짜기로 북향하고 있다.
흠백산 : 노루목 마을 서쪽 산으로 백로담에서 강을 건너 마주보이는 큰 산이다.(해발472m) 특히 박대천변으로는 가파른 벼랑으로 내려와서 몹시 험한 산이다. 이 산을 경계로 북쪽의 거봉리, 서쪽의 대티리와 나누어진다.
큰재 : 후영리 북쪽에서 거봉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