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물초등학교 매전분교장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면 매전리 4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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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도

지역사회배경

기초조사시에는 매양리로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 의하면 매전리를 맹자, 증자, 도자, 안자의 명에다 동자를 붙여 지어진 것이라고도 한다. 그중 맹자동이 현 원매전이라 한다. 원매전은 성불산을 북으로 동남으로 병풍친 것과 같이 두르고 앞서들 산을 바라보며 동으로 트인 분지를 이루는 곳이다. 원매전은 아랫맹이, 웃맹이로 동리가 나누어진다.
만지골 : 만나는 지점이라는 뜻을 가진 골이라서 언젠가는 저수지가 막힐 것이라고도 한다. 기곡가는 구렁을 이룬다.
청석골 : 골을 청석으로 이뤄놓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렁끝 : 산골이 뻗어 내려오다가 끝을 이루는 지점으로 마을위에 있다.
곱든재 : 칠성면에 속해있는 마을명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범바위 : 범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장봉 : 원매전 남쪽의 곱든재고개쪽으로 산봉우리가 네 개가 솟아 있는 것을 가리켜 지어진 이름이다. 김해김씨, 청주한씨, 진씨, 박씨, 윤씨등 다양한 성씨가 살고 있다.
- 도전리 : 되전리라 속칭한다. 도자동이 도전으로 변했다는 설도 있으나 도전리는 박씨가 개척하였다고도 전하고 있다. 해발고는 증자동 보다도 오히려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증자동과 비슷하게 경작형태가 이루어 진다.
위도전 : 도전리의 윗말을 가르키며 도전리의 전호수가 이곳에 살고 감물초등학교 매전분교가 있는곳을 통틀어 말한다.
아랫도전리 : 현재는 3가구가 살고 있으며 감물초등학교 매전분교 관사의 교사 2가구는 비농가이기도 하다. 소를 많이 기르고 있으며 감물면에서는 유일하게 박고치를 재배, 생산하여 일본에 수출하는 것을 충무지역과 제휴하고 있는 부락이다. 감물소재지에서 6Km정도 떨어져 있으며 소득이 제일 적은 부락이기도 하다. 벼락바위…옛날에 벼락을 맞은 자국이 선명히 나있고 쪼개져 있는 바위로 아랫도전리 저수지 위에 있다.
옻물내기 : 물이 차가워 옻을 낫게한다는 차가운 샘물이 마을주변에 있다.
소재 : 쇠재라고 부른다. 소가 누운 형국의 산을 이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칠성면 비도리 가는 쪽으로 와우형의 산고개가 있다.
죽상골 : 동리앞 한건한 땅이 있는곳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왜 죽상골이라 부르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제당골 : 증자동으로 가는 고개마루 옆에 옛날 산제당이 있던 골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샘골 : 물이 나는 곳이 없어서 샘을 구하는데 도사가 지나며 물이 나는 샘이 생기겠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감물초등학교 매전분교가 있는 골을 말하는데 학교에서 샘을 팠으나 물은 나지 않아 샘될 곳을 찾는 골이 되었다.
- 안민동 (일명 아치실) : 아치실이라 불린다. 옛날 장사를 지내기 위하여 묘자리를 파는데 학이 날아가서 앗차하여 아차실이란 설도 있다. 원래 영풍아차실이다. 연풍현 하차곡리였다. 그 후 장풍현 아차곡인 때도 있었다. 동리가 그 이전에 아차곡리라 하였다. 일설에 안자동이란 말도 있으나 맹자동, 증자동, 안자동, 도자동으로 매전리 동명의 유래를 보기도 한다. 함양박씨 문중 호구장 308년전의 것을 보면 즙전리로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고사리가 많이나는 고장이다.
벌퉁모링이 : 증자동 양산목으로 가는 길쪽을 말하는 것으로 산세를 안고 도는 것이 벌통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홈골 : 홈같이 오목하다는 뜻이다.
질마질 : 질마같이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큰골 : 골이 제일 크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관창골 : 화랑소년들의 훈련장이었던 박달산골을 관창의 명을 따서 이렇게 부른다.
지당골 : 동리에서 동쪽으로 1Km 떨어진 곳으로 산신에 대한 고사를 올리던 곳으로 조그만 집이 있었으나 1977년도에 불법건축물 철거 계획에 따라 철거를 했으나 지금도 매년 음력 정월보름날 동리에서 깨끗하고 집안에 이상이 없는집 두집을 골라 동리의 무사함을 빌고 있다.
성재(말바위) : 정확한 년대는 알 수 없으나 동네 북쪽에 능선을 뒤로하고 높이 1m 정도로 쌓아올린 터가 있고 주위가 말바위라고 평평한 바위가 있으며 바위의 여러곳에 말발자국이 있음
선바위 : 동네 북동쪽에 위치한 바위로써 가로 두자, 세로 두자, 높이 2m 정도의 사각기둥처럼 서있어 선바위라 부르고 있음
물탕거리(약수터) : 동네에서 서쪽으로 700m 떨어진 곳으로 사시사철 고정적으로 맑은물이 나오는 곳으로 여름에는 외지에서 많은 피서객들이 몰려와서 목욕도 하고 현장에서 점심도 해먹고 물도 받아 가지고 가고 있으며 특히 중요한 것은 아무리 가물어도 즈금도 줄지 않고 장마가 져도 물이 불어나지 아니하며 겨울에는 김이 나면서 차지 않고 여름에는 발이 시려워 1분이상 담그지 못하므로 일명 약수터라고도 함.
- 증자동 : 징개골이라 속칭한다. 증자동이라 표기된 것은 언제쯤인지는 모르나 금계골이란 말도 있다. 금이 나는 골이란 뜻인데 짐계골로 되었다고도 한다. 증자동은 박달산 서남 계곡의 협소한 골짜기가 4Km이상 뻗어있는 부락으로 양산목, 윗말, 중간말로 이룬다. 양산목은 정감록의 피난지라고 모여들은 사람들이 이룬 부락이다. 중간말, 윗말은 왜정시 금을 캐기 위한 광부들이 정착하여 이룬 부락이다. 증자동은 감물면에서 전기를 제일먼저 밝힌 부락으로 금광이 성황을 이룰때는 광산의 자가발전으로 증자동을 밝힌 바 있다. 강원도라 불리우리만치 화전민이 많았고 도유림을 경작하는 영세민의 집단지이기도 하다. 옥수수, 고구마를 많이 재배하여 한때 1가구당 50-60叺의 옥수수를 수확한 때도 있었다. 약초와 산채도 많고 산뽕으로 누에 30여장 씩을 치기도 했었다. 6.25때 인민군 패잔병 1개 사단이 몰려온 때도 있었다. 6.25때 공비가 출몰하여 양산목고개에서 경찰 5명이 순직한 사건도 유명하다. 오솔길로 감물까지 상촌에서는 10Km되는 곳인데 새마을사업으로 차가 다닐 수 있는 기이 개통되었다.
박사골 : 옛날에 박사가 와서 기거한 일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새 목 : 산세가 새의 목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마밭골 : 옛날에 그릇을 굽던 가마자리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느진목 : 목이 축 늘어진 것 같은 지형이라 붙여진 이름이다.